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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독거남의 체코 여행 (22)

밝은 낮에 다시 돌아온 까를교



카를교 이름이 정확히 까를교, 카를교, 까렐교, 카렐교 중에 뭐가 맞는 건지 모르겠다.

프라하성 구경 후 천천히 걸어서 다시 카를교로 돌아왔다.

프라하성 갈 때도 천천히 걸어가도 될 뻔했다.

걸어가면 생각보다 많은 게 보인다.






짠 다시 돌아온 카를교.

야간 투어로 왔을 때는 어두워서 잘 안 보였는데 낮에 오니까 확실히 느낌이 다르다.

바닥 배수구부터 돌이 깔린 방향가지 많은 게 보인다.








물이 흐르도록 만든 부분이 다른 곳에 비해 살짝 들어간 게 보인다.

그리고 역시나 많은 관광객들과 양 옆으로 서 있는 석상들.









지나가는 길에 본 다리 옆 어느 집 창문.

잘 보면 유리창에 구멍이 뚫려있다.

밑둥 터진 주전자를 끼워넣은 느낌???? 뭐지?????


아직도 넘나 궁금하다.

왜 구멍을 뚫어놨는지.










다리 옆 풍경.

혹시 나중에 까를교에 간다면 까를교만 걷지 말고 꼭!

까를교 옆 골목길들도 걸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역시 까를교 다리 옆 풍경.

작은 강과 작은 다리가 있다.

저 강에서 카약 타고 싶다.











카를교 옆으로 보이는 골목길 풍경.

유리 공예 집으로 추정되는 상점과 관광객들.

패키지로 안 왔으면 이 골목길들 다 걸어봤을텐데 정해진 스케쥴이 있어 자유시간이 없다.











이건 뭐하는 조각상일까나.

종교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죄수로 보이는 사람을 가둔 모습이다.

이교도에 대한 탄압인가?










대체 무슨 죄를 저질렀기에 갇혀서 고통 받고 이신건지?












낮에 오니까 이런 모습도 본다!

화가 한 분이 그림을 그리고 계셨다.

그림 잘 그리신다.












노란빛갈의 오래된 집.

몇년이나 된 집인지 궁긍.











카를교 중간에 내려가는 다리가 있다.

저기 보이는 카페에서 핫초코 한 잔 마시면 참 좋겠다.










블바타 강 풍경.

프라하 건물들은 죄다 키가 똑같다.











카를교에서 가장 유명한 조각상 성 얀 네포무츠키 청동상.


이분의 이야기는 아래 참고.


성 얀 네포무츠키(존 네포묵)[Sv. Jan Nepomucký(St. John Neopmuk)]


체코에서 가장 존경받는 가톨릭 성인으로 1380년 성 비트 성당의 제단 성직자를 지낸 뒤 1383~1387년 이탈리아 파도바에서 교회법을 공부하고 프라하로 돌아와 1389년 프라하 대주교 대리를 거친 후 1390년 성 하벨 교회의 본당 목사가 되었다. 3년 뒤인 1393년 3월 20일 바츨라프 4세 왕(카를 4세의 아들)에 의해서 암살당하게 되는데 암살당한 이유로는 두 가지의 이야기가 전해내려 온다.


바츨라프 4세 왕은 전쟁으로 성을 자주 비웠는데, 이때에 왕비가 호위병과 바람이 나 임신을 하게 되었다. 왕비가 그 죄책감을 못이겨 얀 네포무츠키 신부를 찾아가 고해성사를 하였는데 그 이야기가 바츨라프 4세의 귀에도 흘러들어가게 되고, 왕은 얀 네포무츠키 신부를 추궁하여 왕비의 고해성사 내용을 밝히려 하였다. 하지만 신부가 끝까지 사실에 대해 입을 열지 않자 왕은 신부의 혀를 자르고 돌을 매달아 카를교 위에서 블타바 강으로 내던졌다. 그 일이 있은 이후 나라에는 좋지 않은 일들이 벌어졌다. 그러던 어느날 블타바 강 위로 5개의 별이 뜨고 그 별들이 떠 있는 곳에 얀 네포무츠키 신부의 시신이 떠올랐고, 그의 시체를 건져내어 성당에 안치하자 좋지 않았던 일들은 점점 사라졌다고 한다. 이 이야기가 온 나라에 퍼져 나가면서 국민들은 점점 그를 숭배하게 되었고 1729년 얀 네포무츠키 신부는 성인으로 추대되었다.


그는 예수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혀 있는 십자가를 안고 머리엔 다섯 개의 별이 떠있는 형상으로 다리를 지키는 수호 성인으로 묘사되고 있다. 얀 네포무츠키 신부의 성상은 카를교 위 30개의 성상들 가운데 가장 오래됐으며 유일하게 청동으로 만들어졌다. 다리의 수호신답게 카를교 위에서뿐만 아니라 유럽의 여러 다리에서도 얀 네포무츠키 성인상을 자주 만나볼 수 있다.


또 하나의 이야기는 바츨라프 4세 왕 시대에 대교황청이 프라하에 있었는데 왕과 교황청이 끊임없는 분쟁으로 격돌하게 되자 왕이 대주교를 잡아들이려 하는데, 도망간 대주교 대신 대주교 대리였던 얀 네포무츠키 신부만 붙잡혀 고문을 당했다. 고문을 받던 중 죽은 얀 네포무츠키 신부는 블타바 강으로 던져졌고 그후 30년 후인 1729년 종교적인 희생양이었던 얀 네포무츠키 신부를 얀 네포무츠키 성인으로 추대하였다고 한다. 이 두 가지의 이야기 중 후자 쪽의 이야기가 좀 더 신빙성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고 합니다.








금색으로 빛나는 개.

포샵 효과 아니고 진짜 저렇게 금색으로 빛이 난다.

하도 사람들이 만져서 그렇다.


사람들이 개를 만지면서 소원을 빌기 때문에.


또 개를 만지면 다시 한 번 카를교에 오게 된다는 전설도 있다고 해서 열심히 만졌다.

다시 까를교에 올 수 있을까??????









바로 옆 또 하나의 금빛 조각.

역시 만지면서 소원을 빈다고 한다.


나도 소원을 빌어봤는데 이뤄질리가 없다.

행동으로 노력을 해야 한다!










구걸하는 아저씨.

이불에 봉인당한 강아지가 귀엽고 인상적이다.

내가 키우던 개들은 못 움직이게 하면 엄청 깨갱 거리던데 얘는 진짜 얌전히 있다.

강아지가 돈 필요한 주인 맘을 아나보다.










까를교 음악대!

소규모 오케스트라 공연도 있었다.

역시 까를교는 낮에 와야 재밌구나 싶다.

아! 해질 때쯤 오면 낮풍경 밤풍경 다 볼 수 있어 딱 좋을 거 같다.









앨범 팔고 계셨다.

많이 팔고 계시길.





동영상 촬영.








벌써 반대편 도착.

열쇠가 주렁주렁 엄청 많았다.


우리나라 남산 자물쇠는 싸구려 철망이라 가득차면 쉽게 뜯어 교체하던데 이건 교체하기 어려울 거 같다.









여기 강에서 자전거처럼 발로 움직이는 패달보트도 탈 수 있는 거 같다.

저 멀리 노란색 페달보트가 보인다.

가격은 대략 15,000원 정도??









계란 노른자로 쌓아 올렸다는 벽돌들.








다시 뵙는 카를 4세.

또 언제 뵐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카를 4세님.









시종 분들도 그럼 안녕히.

까를교 관광 끝.









프라하에서 흑인은 거의 못 봤는데 하얀 세라복 그러니까 해군복장 흑인이 뭘 나눠주고 있었다.

저 때는 뭘 나눠주나 몰랐는데 꽃할배 보니까 블바타강 크루즈 홍보였다.








이번 꽃할배 리턴즈에서 할배들이 타기도 했다.

어르신들 모시고 간다면 카렐교 보트 트립 추천.










트램이 다니는 좁은 길로 외제차들도 지나간다.










프라하 구시가지 광장도 다시 컴백.

천문시계와 틴 성당이 뙇.

낮에 보는 모습은 또 다르다.


틴 성당 저거저거 찔리면 아프겠다.ㅎㅎㅋㅋ



틴 성당


고딕 양식으로 건축된 교회로 세 개의 측면 복도가 있고, 80m의 높이의 쌍둥이 첨탑이 틴 성당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교회 안에는 16~17세기 프라하의 황제 루돌프 2세 때 레지 덴스에 머물렀던 덴마크 천문학자 'Tycho de Brahe'의 무덤이 있다. 원래 이 성당의 이름은 성모마리아 틴 성당이지만 일반적으로 틴 교회라고 간단하게 줄여서 부르고 있다. 성당 북쪽 벽의 로코코 양식의 제단과 동북쪽의 아름다운 출입문이 유명하며, 성모마리아상, 예수그리스도상, 세례 받침 등도 성당의 명물로 꼽힌다.







프라하 천문시계 탑


시계가 정각(09:00~21:00)을 알리면 오른쪽에 매달린 해골이 줄을 잡아당기면서 반대편 손으로 잡고 있는 모래 시계를 뒤집는 동시에 두 개의 문이 열리면서 각각 6명씩 12사도들이 줄줄이 지나가고 황금닭이 한 번 울고 나면 끝이 난다. 


천문 시계는 1490년 하누슈(Hanus)라는 이름의 거장 시계공에 의해 제작되었는데 당시 시의회 의원들은 그 시계공이 다른 곳에서 똑같은 시계를 만들 것을 걱정하여 그의 눈을 멀게 했다고 한다. 그 뒤 시계공은 복수를 하기 위해 시계에 손을 집어넣어 시계를 멈추게 했다는 설이 전해지고 있다. 그 이후로 시계는 여러 차례에 걸쳐 수리되었고 지금은 전동 장치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특히 천문시계는 정말 엄청나다.

시계 좀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반할 거라고 본다.


보통 시계가 아니다.

날짜를 모르는 시민들을 위해 각 계절 날짜 별로 어떤 농사를 해야할지도 알려준다.

글을 모르는 시민을 위해 그림도 넣었다.

바늘이 가리키는 작물을 키우면 되는 매우 획기적인 시계다.


24시간에 황도대 12궁, 별 시간, 천문상의 밤, 행성시간, 적도, 일출, 고대 체코 시간 등을 알 수 있다.


1490년에 만들었는데 그때 조선은 성종 21년 때다.

측우기 발명이 1441년.





일성정시의


조선초기 세종대(世宗代)에는 당시 시각법(時刻法, 또는 時制)인 1일(日)을 12시(時)와 100각(百刻)으로 나누었고, 밤시간은 5경(五更)으로 나누어 시간을 측정하는 많은 종류의 시계가 제작되었다.


그 중에는 자격루, 옥루와 같이 잘 알려져있는 물시계와 앙부일귀(仰釜日晷) 등 여러 종류의 해시계가 있었다. 특히 천문시계의 일종인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는 독창적인것으로서 당시의 과학 기술을 세계적으로 대표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천문시계들은 당시에 사용하였던 다른 계시기(計時器)들과 달리 크게 두가지의 특징이 있다. 첫째는 한양의 북극 고도인 한양의 위도를 정확히 측정하여 일성정시의의 정극환의 방향을 한양에서의 북극고도에 맞추어 사용함으로서 한양을 기준으로한 국가 표준시계라 할 수 있다. 둘째 지구의 자전축 방향인 북극에 맞추어 천문에 사용하는 적도좌표계(赤道座標系)와 일치하도록 설치함으로서 지구의 자전운동으로 인한 하늘의 태양이나 천체의 일주운동의 변화량을 측정하여 주야(晝夜)로 시간을 알 수 있는 주야겸용측시기(晝夜兼用測時器)인 정밀한 천문시계이다.


이것은 낮에 태양뿐 아니라 밤에는 당시의 북극성을 중심으로 항성(恒星)이 규칙적으로 일주 운동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북극성을 중심으로 천구상에서 회전하는 북극성 주위의 별들의 위치를 측정하여 밤 시간(夜時刻)을 측정하였고, 그 시간을 궁중에 알려주고 또한 자동시보 장치인 자격루의 시각 교정에 사용하였다.


세종대왕 시절에도 비슷한 천문시계가 있었다.

백성들을 위한 건 아니었지만.


다만 조선은 화기 개발에 신경 좀 썼으면 좋았을텐데.

딱 세종시절이 서양에선 휴대화기 화승총이 막 보급되던 시절이다.

흔히 아는 불 붙이는 옛날 총.

조선 왕들은 그렇게 외세 침략이 많은데도 대체 뭘 한 건지 아쉽다.










그 시절에 이런 걸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하다.

현대 시계와 크기 말고는 크게 다를 게 없다.

특히 시민들을 위해 만들어졌고 이용됐다는 점이 엄청나다.











여러가지 그림과 가장자리에 빼곡히 적힌 글자들.

정각마다 인형극이 열리기도 한다.






동영상 찍어봤는데 너무 밑에서 찍어 잘 안 보인다.

딱히 특별한 건 없고 인형들이 빙빙 돌아간다.








프라하 구시가지 광장


11세기 무렵부터 교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구시가지 광장은 프라하 관광의 중심이다. 광장 한쪽에는 종교개혁을 주장하다 화형당한 얀 후스의 동상의 세워져있고 광장을 중심으로 주변에는 성니콜라스 교회, 틴성당, 킨스키궁전, 석종의 집 등 명소들이 둘러싸고 있다. 또한 광장의 남서쪽에는 프라하의 상징인 천문시계탑이 있는 시청사가 위치해 있다. 또한 17번지에는 아인슈타인이 살았던 집이 있다.


구시가지 광장도 낮에 오니까 더 재밌고 볼 게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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