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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거남의 그저 그랬던 하루 (오글주의)







"오늘 선배 결혼식이야, 2시면 끝나는데 같이 벚꽃 보러 갈래?"


벚꽃이 가장 분홍이던 지난 달 어느 토요일.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가겠다', '싫다' 대답이 어떻든 상관 없이.


어느덧 30대 중반이지만 아직도 소심한 독거남.


"가자" or "갈까?"


언젠가 어떤 친구놈이 "넌 항상 권유형이라 여친이 없어"라고 말한 게 기억난다.

당시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나이들어 생각해보니 틀린 말이 아닌 거 같기도 하다.


모르겠다.



날이 급 따뜻해졌다. 식이 끝나고 차에 타니 뜨거운 공기 때문에 몸이 나른해진다.


이대로 있으면 잠들 거 같아, 해안가로 차를 돌렸다.


갑자기 바다가 보고 싶어졌다.


"참 예뻤던 골목길인데 죄다 공사중이네"







봄이면 유채꽃과 청보리, 그리고 바다로 가득한 예쁜 골목길인데 호텔이라도 짓나보다.


10년 전에 왔을 때와 사뭇 다른 느낌이다.









시내권에서 몇 안 남은 풍경이다.


이런 해안가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우리님과 살고 싶지만 아무것도 시작된 게 없다.


오늘 결혼한 선배도 꽤나 긴 솔로시절을 보냈었다.

어느 날 여자친구가 생겼다고 했을 때 어찌나 놀랬는지..


대학시절 따랐던 형들 중에서 제일 잘생겼지만 여자후배들과 같이 있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역시 여자와 친해짐에 있어 외모는 중요하지 않다.


여자가 먼저 다가올 정도의 외모와 친절함이 없다면.


물론 관련은 있다. 중요한 게 아니란 것일 뿐.








삼다수와 바다가 만나는 곳이다. 

이젠 삼다수로 더 유명한 제주도 지하수.


민물은 보통 이렇게 바다로 흘러온다. 일부는 삼다수가되어 어디론가 떠나고.


"선배도 시간이 흘러 보통 남자처럼 결혼을 했고..나도 시간이 흐르면 보통 남자처럼 결혼할 수 있을까? 아니면 삼다수처럼 예외적인 길을 걷게될까?"


선배에게 여자친구가 생겼다고 들었을 때 독거남으로써 가장 궁금했던 것은 역시..


"어떻게 만났어요?"


참 나 다운 단순한 질문이었다.



"일하면서 만났어"


답 또한 참 단순했다.








사내커플이라고했다. 

전공을 포기하고 1~2년 새로운 분야에서 미친듯이 공부 후 취업했고 사내커플에 성공했다.


사내커플은 매우 쉽기도 하고 매우 어렵기도하다.



주변인 눈치를 보는 사람에겐 매우 어려운 것이고,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사람에겐 매우 당연한 것이고.



언젠가 사랑꾼 같은 친구에게 사내커플에 대해서 물어본 적이 있었고, 그 친구가 들려준 답은 내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회사와 회사 사람들이 니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아, 공무원처럼 평생 직장이야? 남 눈치 볼 필요 뭐 있어? 언제든 그만두면 끝이야. 하지만 좋은 사람을 만나면 남은 니 인생이 행복해져"


뻔하면서도 맞는 말이다. 다만, 현실은 말처럼 쉽지 않다는 거.








뒤로는 한라산이 보이고 앞으로는 바다가 보이며 옆에 작은 강이 흐르고 있다.

역시 이 동네는 완벽한 마을이다.


크게는 아니더라도 작게 집 지어 살고 싶다.

하지만 요즘 땅값이 너무 올랐다.

어딜가든 전국 땅값 상승률 1위에 맞게 어마어마하게 올랐다.


늦게 결혼하면 집값도 비싸진다.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가 보는 데 이런 게 보였다.

처음엔 무슨 거대 지렁이인가 했다.

누가 양심없이 버린 물을 끌어올리는 플라스틱관이다.


용의자는 이 주변 농부다.


보기 흉했다. 누가 치우지도 않나 보다.










제주도 해안 마을이면 다 있는 민물 빨래터.

이젠 다들 집에서 빨래하지 이런데서 누가 할까 싶다.










"이 쯤에 집을 지어 살면 딱 좋겠다"


다만 공항과 가까워서 그런지 비행기 소음이 좀 걱정된다.

그래도 이런 곳이면 그 정도는 참고 살아야지.


잠귀가 밝아 소음에 민감하지만 이렇게 타협이된다.

층간소음보단 백배 나을 거라 보기 때문에.



결혼도 타협일까?



선배가 오랫동안 솔로였던 이유는 나와 비슷하다.

여자한테 소심해서 아는 사이 이상 진행시키기 어렵다는 것.


식물학 교수님이 말한 '도태'에 딱 맞는 조건이다.

현실에 적응하고 계속 발전하지 않으면 멸종된다.



수 많은 노총각 노처녀들이 나와 같은 과정일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드니 고집이 꺾이더라.."



이미 결혼한 사람들도 다 겪었던 과정이고.


"여자 별 거 없다. 마음만 잘 맞으면 된다."



여자들의 타협은 남자와는 좀 다를 수 있겠다.

공무원 이상 아니면 결혼 안 한다는 사람을 본 적이 있으니.

직업이 별로라고 소개팅에서 차인 적이 있으니.



어쨌든 사람은 나이가 들 수록 결혼관이 변한다.

필요에 의해서든 학습에 의해서든.

그래서 시간이 무서운 거다.


절대 독신이 아닌 이상 미리 꺾으면 참 좋은 건데.

주변에 좋은 사람이 많이 남아 있고 그럴 때.







"집에나 가야지"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생각이 많아졌다.







새 도로를 뚫고 있는지 몰라도 공사중이었다.








"제주시에 도시디자인과가 있었다고?"


충격이었다. 그냥 교통과나 건설과도 아니고 도시디자인과?

이름부터 도시디자인과인데..제주시를 이딱으로 디자인하신 건 의도였나?


인도 조차 없는 위험한 길들, 움푹 패인 도로들, 불필요한 신호등, 좁은 인도, 주차장 없는 도시 등등.


곽지 해수풀장 사태만 봐도..여전히 제주도 행정 답이 없다.


내 미래도 답이 없다.

그 벚꽃들도 이젠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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