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3만원짜리 영어회화 수업이 준 교훈
제주도에 이렇게 좋은 배움터가 있는 줄 몰랐다.
외국어 강좌에서 요리, 악기 등 각 종 문화수업을 저렴하게 받을 수 있는 문화센터가 있었다.
누군가의 추천으로 알게된 것이다.
홍보가 부족해 아는 사람만 아는 그런 곳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좋은 곳을 도민들이 많이 모르고 있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홍보하고 있고.
영어수업을 신청하고 싶었다.
늘 혼자서 공부하다보니 매너리즘에 빠져있었는데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았기 때문에.
내가 신청한 수업은 생활영어 중급 이다.
하루 2시간씩 1주일에 2번, 2개월 간의 수업이었다.
야간 수업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주중에 출근해야하는 직장에게 주간수업은 불가능이다.
주간 수업은 보통 전업주부들을 대상으로 이뤄지는 듯하다.
시간도 좋았다.
퇴근하고 바로 가면 딱 맞는 시간이라 다행이었다.
초급은 너무 쉬울 것 같아서 중급을 골랐다.
근데 실력이 맞을까 걱정 됐다.
[수업 첫 날]
어떤 사람들과 함께 수업을 받게될지 사뭇 긴장되지 않을 수 없다.
비슷한 나이대 노처녀와의 로맨스를 꿈꾸며 강의실로 발을 옮겼다.
계단을 한 칸 한 칸 오를 때마다 심박수도 같이 올랐다.
노처녀 친구랑 같이 손 잡고 영어 공부하면 얼마나 좋을까?
헛된 상상을 하면서 강의실 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오~~~~"
먼저 도착하신 분들의 포스에 눌려 길쭉한 인사를 하고 말았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나에게 40대~60대의 어르신들이 '젋음이는 당신 혼자라 반갑지만 그래도 티내지 않으련다'는 눈빛을 쏴주셨다.
그렇다!
같이 수업 받을 학생들은 모두 유부남 유부녀인 어르신들 밖에 없었던 것이다.
재빨리 정신차리고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 정말 적응 안 된다.
강의실은 이런 모습이다.
수업있는 날이면 막내 답게 일찍와서 미리 자리를 대화형 위치로 옮겨놓는다.
[강사님]
어려도 40대 많으면 60대로 보이는 어르신들과 같이 영어 수업을 받으려니 정말 어색했다.
이런 수업 아니면 평생 대화해볼 일 없을 것 같은 그런 어색함.
"오늘만 나오고 그만 나와야지..."
라고 굳게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강사님이 오랜만에 젊은 학생을 만나 반가우셨는지 첫 날부터 정말 잘해주셨다.
나 같은 노총각을 이렇게 반가워해준 사람은 오랜만이다..마음 약해져서 2달 내내 개근했다.
치과 가야했던 날 하루 빼고.
[난이도]
중급이라곤 하지만 수업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다만, 회화 수업이라 어느 정도는 대화가 가능해야 했다.
부담스러운 정도는 아니어서 편했다.
[수업]
수업 중 가장 재밌었던 것은 바로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히 영어로 이야기한다는 것.
예문을 바탕으로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하게 된다.
예를 들어 'I want to~' 라는 예문이 있으면 나 같은 노총각은 'I want to marry' 라고 하겠고..
어느 날은 예문이 I hate ~ 였다.
I hate bugs
I hate waiting for someone
I hate to sing
짧고 간단한 문장이 이어지다가 갑자기 놀라운 문장이 나온다.
I hate to take care of my family
노총각 입장에서 많이 놀랐다.
"가족이 싫다고?"
거의 환갑이 넘도록 가족과 남편만 보살피고 챙기고 살았더니 이젠 자신을 위해 살고 싶으시다고 했다.
좀 많이 놀랐다.
아내든 남편이든 가족을 위한 삶이 너무 당연하다 생각했었는데 가족이 있기 전에 '나'가 있고, '나' 또한 '가족'의 일원이며 '나'가 행복해야 가족 또한 행복한..뭐 그런 간단한 깨닳음.
나 또한 60대가 되어서도 그 분 처럼 배움을 멈추지 않을 수 있고 '나'를 위한 삶을 고민할 수 있을까?
물론 노총각 먼저 탈출하고.
[노총각의 예문]
몇달 지나서 잘은 기억 안 나지만 I spent 라는 예문이 있었다.
"I spent every day studing english" 라고 말했더니 다들 빵 터지셨다.
사실 거짓말 맞다. 영어공부 멀리한지 오래다.
역시 어르신들을 속일 수는 없나보다.
이게 바로 내가 어른신들과 달랐던 점이다.
어르신들은 정말 예문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하신다.
근데 나는 뭔가 대답을 만들어낸 것 같은 느낌이다.
잘지내지도 못하는데 대답만을 위해 형식적으로 "I'm fine"이라고 대답하는 느낌.
아직도 어르신들에게 어색함을 느끼나보다.
좀 더 솔직해지기로 마음 먹었다.
이번엔 'someone said 어쩌고'라는 예문이었다.
좀 더 솔직한 내 이야기로 답을 했다.
"my mom said 'you should get marryed'"
"but i said 'i'm sorry'"
또 한 번은 i can 이었다.
"i can work in the farm everyday but i can't get marry..sorry mom"
너무 솔직하게 말했나??
이제 슬슬 강사님 포함 어르신들이 나를 결혼하고 싶어 미친놈총각으로 보기 시작하셨다.
어느 날은 주말에 있었던 일을 영어로 얘기하고 있었다.
난 지난 주말 직장동료 결혼식 다녀온 이야기를 했다.
"last sunday was my co-worker's weddingday. so i went to 오션스위츠호텔"
말이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바로 옆자리에 앉으신 젊은 아주머니가 빵 터지시더니 책상에 머리를 묻으셨다.
marry 의 m 자도 안 꺼냈는데 큰 웃음이 터저버렸다.
이 놈의 노총각은 이미지가 이렇게 굳어져버렸다.
간신히 수습하고 수업을 계속 이어가는데 내가 무슨 말만하면 또 빵 터지신다.
참으시나 싶더니 또 터진다. 그렇게 간간히 5분동안 빵 터지셨다.
ㅋㅋㅋ
혼자서 캐나다 미국 등으로 여행도 다니시고 일도 열심히 하시는 멋지고 밝은 아줌마셨다.
[어르신들의 과거 이야기]
어르신들 간의 대화는 확실히 내 나이 또래들의 대화와 다르다.
"똥꿈을 꾸면 대박이 터진다"
"내가 공무원이었는데 20년 전에 똥꿈 꾸고 승진했었다"
"어제 폭탄 터지는 꿈을 꿨다"
꿈 하나로도 하루 종일 즐겁게 얘기하실 것 같았다.
꿈 자체보다 살아오신 날을 바탕으로 어떤 이야기든 재밌게 가지고 노신다.
다들 열심히 사셨던 분들 같다.
아직도 이렇게 영어 배우러 다니시는 것만 봐도 대단하시다.
나도 환갑이 지나도록 배움을 멈추지 않을 수 있을까?
공무원하셨던 분들이 많으셨다. 지금은 퇴직하신 듯하고.
어떤 분은 한글을 모르는 노인분들을 위해 국어강사 자원봉사도 하고 계셨다.
어떤 분은 자기 사업 열심히하고 계시고.
어떤 분은 전문 분야에서 이름을 날리시고 계시고.
영어를 배워보려했지만 삶을 배운 것 같다.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를 설계하고 그리고 싶어졌다.
미래를 준비한다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현실 밖에 볼 수 없는 삶은 위험하다.
개미와 베짱이 동화가 이미 알려준 교훈이지 않은가.
나도 개미처럼 열심히 노력해서 이미 결혼했어야 했는데..베짱이 같이 젊음을 낭비했기에 이렇게 노총각으로 살고 있다.
영어도 학창시절부터 열심히 공부했어야 했는데 뒤늦게 공부하려니 정말 힘들다.
단어 하나 외워도 1주일 지나면 잊어버린다.
신체 능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운동선수들도 30대 넘으면 빠른 속도로 능력이 떨어진다.
세월 앞에 영원한 것은 없다.
"가진 것을 낭비하지 않고 다가올 미래를 위해 준비한다"
요게 제일 중요하다.
노처녀, 노총각들 화이팅!
[어설픈 연애 코치]
연애, 결혼 이런 이야기만 나오면 꼭 나와 연결된다.
어느 날은 이번 주말에 무엇을 할 건지 이야기하고 있었다.
어느 아주머니가 "남편이 건축 쪽에서 일하기 때문에 매일 힘들어 죽겠다고 해요. 근데 전 남편이 돈 많이 벌어와줘서 정말 기뻐요. 이번 주말엔 파주 아울렛으로 1박2일 쇼핑 가요"
이 말이 끝나자 1박2일 육지 쇼핑에 대한 토론이 벌어진다.
'옷 가격'에서 '남편이란 무엇인가'까지 쉬지 않고 이어진다.
그러다 토론이 결론은 "노총각씨 결혼하려면 저런 남편 보고 배워야 돼"가 된다.
근데 독거남은 1박2일 육지 아울렛 쇼핑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왕이면 명동으로, 아니면 홍콩 일본 어디든 가능하다.
매년 1~번 명동에 옷 사러 가고 있다.
[어르신들의 이야기]
내가 너무 평범하고 아직 세상을 잘 몰라서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르겠지만.
평범한 어르신들은 아니신 것 같았다.
어느 아주머니는 딸이 페북에서 일한다고 하셨다.
인도 남자와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다고 한다.
또 어느 분의 아들은 한국이 너무 좁아 중국에서 제과사업 중이라고 한다.
어느 분의 딸은 캐나다에서 유학 중이고
어느 분의 아들은 독일에서 전문직으로 일하고 있고
어느 분은 유명한 식당을 운영하고 계셨고
어느 분은 80년대에 평범하지 않은 해외여행을 하셨었고
어느 분은 아직도 평범하지 않은 해외여행을 하고 계시고
어느 분은 아직도 노처녀시고..
어느 분은 어린 시절 형제 4명?을 사고로 잃었다고 하셨다.
책 속에 died 문장이 등장하자 자신의 과거 이야기 꺼내기 시작하셨다.
부모님이 어린 자식들을 목욕시키고 재웠는데 모두 원인 모를 질병을 앓기 시작했고 모두 사망했다고 한다.
원인은 파상풍이었고 샤워한 물이 오염되었었으며 그 물이 배꼽을 통해 체내로 흡수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과거 어려웠던 70년대? 엔 별별 일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러자 또 젊은 노처녀 한 분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고..분위기가..
[결혼에 대한 조언]
아무래도 예전이라 그런지 다들 22살~24살에 결혼하셨다고 한다.
일찍 결혼했기에 젊은 시절을 함께 보내며 많은 일을 겪으셨고
많은 것을 경험하셨기에 무심하게 툭 던지는 말도 가볍게 들리지 않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오래 살고보니 돈은 중요하지 않았다는 것.
젊었을 땐 몰랐지만 나이들어보니 돈보다 중요한 게 너무 많으셨다고 했다.
돈 안 따지는 나한테는 큰 영향 없었지만 정말 좋은 말씀이셨다.
미래의 여친이 꼭 들었으면 하는 이야기였다.
물론 물질만능주의에 빠진 요즘 젊은이들도.
[결론]
영어 배우러 갔다가 많은 것을 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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